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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스타트업에서 인사 평가자로서 연봉협상 준비하기

권진석 2023. 1. 20. 01:04

“일을 잘하는 사람은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든다.”

막 커리어를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시스템을 잘 만드는 능력만이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평가하는 유일한 척도는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지만, 이러한 인재는 어느 조직에서든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수년 전 당시 제가 있었던 회사에 새로운 임원 분이 오셔서 회사의 업무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빌딩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처음엔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 게 번거롭게 느껴졌었는데, 개선이 반복되면서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었습니다. 착하고 인자한 성품을 갖는 것이 좋은 상사의 조건 중 하나임은 분명하나, 팀원들이 모두 효율적인 업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상사에게 필요한 능력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좋은 상사, 매니저로서 일을 하기 위해선 HR에 대한 능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스타트업에서 개발팀을 빌딩, 리딩하려다보니, 자연스럽게 HR업무와 이어지게 됐습니다. 팀원들이 조직에 대해 궁금한 점, 불만인 점은 없는지 확인하게 됐고, 지속적인 성장과 동기부여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습니다. 개발자들이 일을 잘하고, 회사도 개발팀이 일을 잘한다고 인정을 해야 제 업무 역시 쉽고 편해졌죠. 스타트업의 임원이나 팀장은 그 직무를 막론하고 어느정도의 HR에 대한 능력은 있어야하는 것 같습니다.

HR 업무 중 특히 어려운 것이 연봉 협상인 것 같습니다. 제 연봉을 올릴 때에는 한없이 쉬워보이고, 제 마음을 안 알아주는 것 같아 불만스럽기만 하던 일들이 입장이 바뀌니 그렇게 난감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조언을 구하는 인사팀장님 역시도 연봉 협상이 최대의 난제라고 하셨죠. HR매니저가 없는 스타트업에서 성과 평가 및 연봉협상을 대신 진행해야하는 팀장으로서 한 달 가까운 고민을 했었고, 제가 이번 협상을 위해 준비한 내용에 대해 소개해드립니다.

연봉 협상의 원칙

연봉 협상은 6개월 단위로 진행한다

연봉 협상은 어느정도 근속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저는 직원들을 채용하기 전에 약속했던 내용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잦은 주기의 연봉 협상이었죠. 스타트업이 빠른 속도로 업무를 진행하고, 또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잦은 주기로 성과를 평가하고 연봉을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더 높은 연봉을 주어서는 안된다.
이유 없이 연봉을 올려주면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직원들보다는 회사를 위하는 입장에서 연봉 협상에 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연봉 인상이라는 무기는 오직 회사에게 의미있을 때에만 사용하기로 생각했죠.

제가 준비한 연봉 협상은 기본급에 대한 협상입니다. 구성원들과 나눌만한 영업이익이 없기 때문에 성과급을 준다는 게 이상하고, 성과를 협상으로 나눈다는 것 또한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같은 일을 하는 직원에게 더 높은 기본급을 준다면 그 회사는 기분 좋으려 참 바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어제까지 1,000원을 주고 사먹던 과자를 만약 오늘부터 2,000원을 주고 사먹는다면 이는 좋은 거래일까요? 지금까지 1시간에 끝내던 일을 퀄리티 향상 없이 2시간에 끝낸다면 생산성이 증가한 것일까요? 회사의 입장에서는 더 적은 비용을 지불하고, 더 높은 생산성을 일궈내야 합니다.

연봉 인상의 총액은 정해져있다

인사 평가와 연봉 협상을 하기 전에 인상할 수 있는 총 금액을 결정해야합니다. 우리가 이번에 해야할 것은 기본급 인상이기 때문이죠. 기본급 인상은 퇴직금, 수당, 사대보험 등의 비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스타트업의 경우 특히 임금이 총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임금 인상 금액을 과하게 잡는다면 회사의 존속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를 고려하여 이번 연봉 협상에서 인상할 수 있는 총액을 회사의 런웨이를 고려하여 준비했습니다.

연봉을 인상하는 경우는 정해져있다

첫 번째로, 회사가 눈에 띄는 성과를 이뤘고, 이 성과로 인해 자금 상황이 눈에 띄게 좋아졌을 경우입니다. 만약 특정 직원이나 팀이 이 성과를 이뤄냈을 때에는 성과급으로 보상해야겠지만, 회사의 전반적인 사정이 좋아졌다면 직원들 모두가 연봉 인상으로 보답받을 수 있어야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아직 그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직원이 성장을 충분히 일궈냈을 때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에 대해 3가지로 경우를 나눴습니다.
- 업무 능력에 있어 눈에 띄는 성장이 발견되었고, 이것이 사업의 성과와 연결될 수 있음.
- 기존에 하지 않았던 다른 업무의 책임자가 되어 필요한 채용의 수가 줄어듦.
- 팀원을 채용하고, 팀장 또는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됨.
위의 세 가지의 경우 모두 연봉 인상의 자격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회사의 자금 상황에 변동이 없는 상태라 채용이 어렵고 따라서 3번의 경우는 이번에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위의 이야기하는 연봉 인상은 연 기준으로 10% 이상의 비교적 큰 인상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 연봉을 동결한다

물가인상률만큼 올리는 것을 동결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에는 좀 더 보수적으로 생각하여 명목상 인상이 전혀 없는 동결로 생각했습니다. 물가가 올랐다고 회사의 자금 상황이 그만큼 좋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상승한 물가만큼 다른 비용이 증가했을텐데, 임금에서 줄이지 않았다는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 직전 6개월 동안 맡은 업무를 적절하게 해내지 못함.
- 현재 맡은 업무에서 숙련도 향상이 필요하여, 향후 6개월 동안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음.

중간 단계, 물가상승률만큼의 인상

- 맡은 업무를 모두 성실하게 잘 해냈고(팀원과의 관계 포함), 업무를 숙련도가 전반적으로 증가함.
- 향후 6개월 동안 진행할 업무가 직전 6개월과 크게 다르지 않음.

아마 다음 연봉 협상 때 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아진다면 좀 더 후하게 인상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연봉 협상의 절차

인사 평가 자료 수합 -> 1:1 미팅 -> 인사 평가 및 연봉 인상안 결정 -> 연봉 인상안 통보 -> 후속 1:1 미팅(요청 시)

인사 평가와 연봉 협상은 반드시 구분하라

꼭 재정적인 이유가 아니라하더라도 회사가 직원의 월급을 마음대로 올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내일채움공제가 이에 해당합니다. 만약 어떤 직원이 이로인해 정당한 연봉을 받을 수 없는 상태라면 인상받을 수 있을 때 그만큼을 충분히 인상받아야 합니다.

평가와 보상을 분리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의미있습니다. 연봉 인상의 자격이 되지 않는 직원들의 성과도 함께 평가하고 연봉 인상이 가능할 때,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기준 연봉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현재 연봉이 3,600만 원(현재 내일채움공제 상한액)이라면, 2년 뒤 협상할 연봉을 미리 협상하는 것입니다. 가령, 두 번의 10% 인상을 결정했다면, 내일채움공제를 마치는 시점부터 인상된 연봉 약 4,300만 원을 지급하는 것입니다. 이는 회사의 입장에서도 이득이며, 직원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인사 평가를 모두 마친 후 인상안을 결정하라

우리에게 돈과 시간이 넘쳐나기 때문에 이 복잡하고 힘든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직원들에게 더 높은 동기부여를 하고, 회사가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사실 연봉 인상은 직원들이 인사 평가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기 위한 자극에 불과합니다.

인사 평가는 잠재 기여도를 반영해야한다

흔히 자주하는 실수가 과거의 성과로 연봉 협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객관적으로 수치화시킬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과거 성과는 이미 지난 일로 다음 해에 반복하여 발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노고는 성과급으로 보상해야합니다. 연봉 협상은 기본급에 대한 내용이니, 과거 성과가 직접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성과를 잠재력에 대한 평가요소로 활용할 수는 있습니다. 가령, 업무에 대한 달성도는 얼만큼 되는지, 자신의 직무와 회사의 사업에 대한 이해도는 얼마나 되는지를 평가한다면, 이 직원의 그릇에 대해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지난 기간 동안의 성과 및 반성, 항후 계획과 이유에 대해 주관적인 기술을 요구한다면 이 직원의 잠재력의 측정은 더 쉬워질 것입니다. 특히 이 직원이 향후 자신의 계획이 사업의 성과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느냐/없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평가자는 위에 언급한 평가를 토대로 직원에 대한 계획을 완성해야합니다. 이 직원이 자신의 직무, 직책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조직, 사업에 대해 얼마나 기여를 하고 있는지, 향후 더 큰 책임을 맡을 그릇이 되는지를 평가하는 일이죠. 그리고 연봉 인상은 가까운 미래에 큰 역할을 맡을 사람에게 제공돼야합니다.

연봉 인상안에 대해서 통보하라

인사 평가를 위해서는 직원마다 최소 1회 이상의 미팅이 필요합니다. 저는 연봉 인상안을 정하고 이를 통보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의사소통에 있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평가자가 작성한 인사 평가와 함께요. 직원에 인상안이 대해 불만족스러워할 경우가 많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이 경우, 1:1 미팅을 따로 진행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조율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상안이 수정되는 일은 평가지 수정 없이는 발생해서는 안됩니다. 연봉은 목소리가 큰 순서로 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높은 연봉 인상을 원하는 직원이라면 자신이 더 큰 책임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합니다.

마치며

이 과정은 모두 조직의 목표를 맞추기 위함이다

인사 평가와 연봉 협상은 회사가 잘되기 위함입니다. 회사가 잘되기 위해선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회사에 기여해야하죠. 평가자 역할은 직원의 기여에 따라 보상하는 것도 있지만, 앞으로 할 일들 중에 사업에 기여가 되지 않는 일들을 제거하여 회사의 성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잊어선 안됩니다.